궁지에 몰린 아군을 구출하기 위해 소피아 항구로 향하는 클레베와 페르난 두 사람…
………………
이제 그만 기분 풀어, 페르난.
이제 곧 소피아 항구라고.
넌 화도 안 나!?
어째서, 우리 소피아 기사단이
슬레이더 자식의 뒤처리나 해야 하는 건데.
할 수 없잖아. 소피아 항구는 우리 나라 유통의 중심지야.
그곳이 무역 상인들의 반란으로 수개월이나 교역이 묶여 있다면
국민들의 생활에도 지장이 올 거야.
실제로 성 밑에선, 물가가 급등하여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그래, 맞아. 그건 큰 문제야!
그러니까 더더욱, 우리 기사단이 앞장서
조속히 해결했어야 했지.
거기서 갑자기 끼어들어 자기가 맡겠다고 한 건
그 슬레이더잖아!
그 자식, 분명 자력으로 해결했더라면
그걸 대의명분으로, 항구의 이권을 꿀꺽했을 거야.
그런데 지금 이 꼴을 보라지!
상인들이 고용한 용병 군단에게 고전해서, 우리에게 원군을 요청해?!
그냥 용병들에게 당해 물고기 밥이나 됐음 좋았을걸.
말이 지나쳐, 페르난.
그 용병들 때문에 항구 주변에선 약탈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야.
슬레이더의 행실에,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이상, 고통받는 백성들을 못 본 척할 수도 없잖아.
지금은 참고 넘어가자.
젠장…… 나도 알고 있어.
어차피 우리 기사는 왕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는 걸.
하지만 그 녀석을 데려오지 않은 건 정답이었어, 클레베.
그 녀석?
클레어 말야. 나보다 더 열받아 했거든.
만약 데려왔으면 제일 먼저 슬레이더한테 날아가
꼬챙이로 만들어 버렸을걸.
그런 무서운 말 마.
클레어가 기사단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위가 아파 죽겠으니까.
그 말괄량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벌일지 생각하면……
하핫, 천하의 기사단장도 여동생에겐 못 당하는군.
그래도 지금은 네게 공감할 수 있어.
그러고 보니…… 네 여동생은 몇 살이지?
이제 막 4살이 됐어. 남동생은 5살이 될 거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아버지께서 후처를 들이겠다 말씀하셨을 땐 마음이 복잡했지만……
나이 차 나는 동생들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은 몰랐어.
다음 휴가가 벌써 기다려져.
그래…… 나도 꼭 만나 보고 싶다.
그래, 언제든 와. 클레어도 데리고.
분명 좋은 놀이 상대가 될 거야. 알맹이는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하하하…… 그 말은 클레어한테 비밀로 해야겠군.
자,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어. 휴가 전에 일 좀 해 볼까.
오오, 훌륭해! 어서들 오라고!!
역시 우리 맹우, 클레베경이야.
자, 얼른 이 야만스러운 용병 놈들을 내쫓아 달라고!
하여간…… 후안무치란 이런 거로군.
상인들이여, 병사를 물려라!
항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해야 하지 않겠나.
얌전히 물러난다면, 우리도 거친 방법은 쓰지 않겠다 약속하지.
아직 늦지 않았다. 자, 항구를 해방하라.
이제 와서 그 말을 믿으라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항의했는데, 나라가 해적을 처리해 준 적 있어?
안 그래도 가뭄이 계속되어 작물 재배도 못하고 있는데
겨우 얻은 식량조차 왕도 놈들이 전부 가져가 버리고.
세금은 계속 오르질 않나…… 우리 보고 굶어 죽으란 소리야?!
그건…………
애당초, 얘기도 없이 공격해 온 건 그쪽이잖아!
이제 너네들 말은 안 들어.
다들, 신경 쓸 거 없어! 이 녀석들 전부 쓸어 버려!!
히이익?! 너희, 뭘 보고만 있어!!
얼른 날 구하지 않고!!
하여간, 저 자식은…… 자기 무덤만 골라 판다니까.
어떻게 할래, 클레베?
……할 수 없지. 간다!
슬레이더경을 구출하라!!
하아, 살았다……
역시 국왕 폐하께 신뢰받는 소피아 기사단 정예들다워!
이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지, 클레베경.
뭐가 빚이냐, 머저리!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동포의 시체를 밟고 지나왔는지 알기나 해?!
부하도 버리고, 혼자 요새에 들어앉아 목숨이나 구걸하는 꼴하곤……
그러고도 명예로운 소피아 귀족의 일원이냐?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뭐………… 이, 이 내게 머저리라고……?!
페르난, 네 이놈………… 저자세로 나오니 주제도 모르고.
이, 클레베 금붕어 똥 같은 게!
뭐라고?!
적당히들 해, 두 사람 다!!
저들은 아직 병력이 남아 있어. 얼른 이곳을 뜨지 않으면……!
아직 안 끝났어. 놓칠 것 같으냐!
큭…… 벌써 원군이 도착했나.
일어서, 슬레이더. 지금부터 돌파다!
쓰러진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화살 한 발 정도는 되돌려 줘야지!!
뭐?! 저, 저렇게 많은 놈들을 상대로…………?
…………크억! 아야야야야…………!!
아무래도 상처를 입은 것 같아. 아파서 못 움직이겠…………큭!
허?! 이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아까까지 멀쩡하게 호통치던 건 어디의 누구시더라!?
시……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아무튼 난 못 싸우니까 그렇게 알라고!
게다가, 너희 임무는 날 구출하는 거잖아?
너희가 저놈들을 유인하는 동안 난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하겠어.
어때, 이견 없지?
뭐, 걱정하지 말라고.
국왕 폐하께, 소피아 기사단은 훌륭히 임무를 완수하였다고 보고해 줄 테니.
그럼, 뒷일은 부탁하지. 자랑스러운 기사단 나으리!!
큭큭큭………… 이거야 원.
정말 훌륭해!! 전화위복이 따로 없어.
기사단 놈들 따위, 용병들에게 당해 물고기 밥이나 돼 버리라지.
고상 떠는 클레베 자식은 예전부터 눈엣가시였고
그보다 페르난 자식,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날 모욕한 대가는 지옥에서 치르게 될 거다.
아~핫핫핫핫…………!
슬레이더, 저 자식…………!!
비열한 것도 정도가 있어. 도대체 어디까지 추락할 셈이지?!
글쎄. 이미 내 눈에는 너무 작아져, 안 보이게 된 지 오래라.
어…………
왜 그래?
아니………… 너도 그런 말을 다 하는구나 싶어서.
하핫……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자, 짐도 사라졌겠다 다시 한 번 날뛰어 볼까.
귀여운 누이동생에게, 오빠의 멋진 무용담을 들려줘야 하잖아?
……아아, 그래. 좋아, 해 보자고!
……아직…… 아직…… 내겐…………!
거, 거짓말……! 이런…… 곳에서……
크허억……컥……!
시, 싫어…… 이 내가…… 이런 놈들에게…………!!
우린 돈만 주면 뭐든지 하거든.
너희에게 원한은 없지만 너무 나쁘게 생각 말라고.
크억…… 젠장할…………!
으윽…… 말도 안 돼…………
그 많던 용병이 모두 당해 버리다니……!
자, 이제 항구를 해방해 줘야겠어.
이 항구엔 소피아 전 국민의 생활이 걸려있거든.
그걸 부당히 점거한 죗값은 잘 알고 있을 테지.
하…… 그야 알다마다요.
이러지 않아도 언젠가 굶어 죽었을 목숨.
자, 기사님. 목이든 뭐든 얼른 쳐내 버리시지요.
……확실히 너희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다.
주모자는 잡혀가 받아 마땅한 처분을 받게 되겠지.
……………………
허나, 너희의 뜻은 내가 반드시 왕께 전하마.
해적 토벌도, 조속히 우리 기사단이 일임받도록
부탁드려 볼 생각이다.
클레베…………
저, 정말이십니까?! 기사님…………!
그래. 약속하지.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클레베…………
그런 약속을 해도 괜찮은 거야?
뭐가? 거짓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하긴.
하지만 해적 토벌을 막고 있는 건 그 재상 도제라고.
표면상으론, 리겔과의 마찰이 어쩌고 하고 있지만
그 자식, 뒤로는 해적 놈들과도 손을 잡고 있다는 것 같아.
너와 도제, 국왕 폐하께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실지……
짐작 못 할 네가 아니잖아.
……그래도 사람한텐 희망이 필요해.
폐하께는, 상인들에게 관대한 처벌을 내려주시길 부탁드려 볼 생각이야.
클레베…………
그래, 그렇군. 나도 함께 부탁하지.
그래, 고맙다. 페르난.
그건 그렇고 슬레이더 자식……
지금쯤이면, 성으로 홀랑 도망쳤겠지.
마중 나온 클레어한테 쫓기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
……웃을 수 없는 농담이야. 마틸다가 막아 주면 좋으련만……
하하하……
그 마틸다도, 클레어도, 분명 널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자, 얼른 가자고.
페르난……
그래, 돌아가자. 우리의 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