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왕국의 중심. 성벽 내에는 거대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휘황찬란하고 다소 사치스러운 양식의 성.
와아, 성이다~!
대단하다~! 크다~ 예쁘다~!!
메이…… 유난 떨지 마.
놀러 온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 멋진 건물은 처음 보는걸.
뭐, 그건 그렇지.
섬 어부의 자식인 우리와는 평생 인연이 없는 장소니까.
멋지다……
이런 성에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이봐……
…………
아……
죄, 죄송해요. 세리카님.
저희는 먼저 가 있을게요!
아……
왜 그래? 아가씨.
세이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은 저 녀석들처럼 들떠 있는 것 같진 않네.
네? 그, 그렇지 않아요.
너무 놀라워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뿐이에요.
헤에……
뭐, 아무렴 어때. 우리도 얼른 들어가자고.
…………
다시 이 성에 발을 내딛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아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서 가 보자……
꺄악!!
왜 그래, 아가씨?!
운명의 아이여, 어서 도마님의 곁으로……
크악!
뭐야, 이 녀석들. 도제란 녀석의 잔당인가?!
이봐, 우린 해방군이 아니라고!
아뇨, 그렇지 않아요. 이 사람들의 목적은……
……나……?
아무튼 이대로는 당할지도 몰라.
제길, 그 꼬마 녀석들!
들떠서 먼저 가 버리다니……
꺄아악!
아가씨!!
앗……?
비열한 녀석들……
더러운 손으로 이 아이를 건들지 마라.
네, 네 녀석은 뭐냐?!
너 따위 녀석의 물음에 답할 이유는 없다.
목숨이 아깝다면 당장 꺼져라.
무슨 소릴……!
할 수 없지, 힘으로라도 계집을 빼앗아라!
저, 당신은……?
…………
지금 내 정체가 중요한 게 아냐.
묵묵히 싸워라. 녀석들에게 잡혀 가고 싶은 건가?
네, 네……
제길…… 물러서! 퇴각이다!
네 이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적들이 물러가고 있어…… 한숨 돌렸네.
감사합니다. 저, 당신은……
……어?
그 느끼한 가면을 쓴 남자라면 벌써 어딘가로 가 버렸어.
그 녀석 누구야? 아가씨 아는 사람이야?
아뇨. 누구일까요……?
이런, 이런.
습격한 녀석들도 그렇고, 모르는 것투성이군.
그렇네요……
그자들은 아마 도제의 부하는 아닐 거예요.
그래, 바다 위에서 날 납치하려던 그 사람과 분명 같은……!
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 나를……?
제길! 그 가면을 쓴 남자는 뭐지?!
아니, 그것보다 계집을 취하지 못한 것을 쥬다님께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할지……
――어이. 너희들, 리겔군인가?
으음…… 네놈은 누구냐?
기, 기다려. 난 적이 아니라고.
도제의 부하였지만 반란군에게 성을 빼앗겨서 말이야.
리겔 쪽으로 망명하고 싶어. 물론 공짜로 받아달라는 건 아냐.
무슨 뻔한 수작을…… 내가 믿을 것 같으냐.
흐음…… 이건 어떨까?
조금 전, 계집아이를 납치하려다가 실패했지?
누구의 명령을 받았는진 모르겠지만 그걸 대신할 공적이 필요하지 않아?
…………
잘 들어. 소피아 성 북서쪽에 숲이 있어.
그 안에 마을이 있는데 말이지……
소피아 해방군, 만세~!!
아름님은 소피아를 구한 영웅이야.
역시 마이센 장군의 피를 이은 분이야.
분명 리겔 제국은 강적이지만……
아름님이라면 분명히 해내 주실 거야.
다들 들떠 있는 모양이지만…… 난 사실 불안해.
리겔 제국은 그렇게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루돌프 황제가 이끄는 기사단도 무지하게 강하지만
도마교의 사제, 쥬다가 이끄는 요술 군단도 무시할 수 없어.
몬스터를 불러내는 그런 녀석들과 어떻게 싸운다는 거지?
신관님, 미라 신전으로 가는 거야?
포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 주변엔 기스의 부하인 도적들이 우글거리고 있고
지반이 약해서 산사태도 자주 일어나거든.
돌아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확실히 도제와 리겔군은 사라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작물은 자라지 않고 몬스터도 출몰하고……
미라님은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 걸까요?
신전으로 조사를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왜인지 모두들 돌아오지 않았죠.
우리가 지금 전쟁만 하고 있을 때인지……
하…… 할아버지?!
마이센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곳에……?
역시 온 건가…… 오랜만이구나, 세리카.
할아버지……!
이제 두 번 다시 뵙지 못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 너도 상당히 예뻐졌구나.
하지만 느긋하게 재회의 기쁨을 누릴 시간은 없을 것 같구나.
네가 섬을 나온 건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겠지?
네……
할아버지, 저는 미라님의 신전으로 향할 생각이에요.
저는 지금 소피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의 열쇠가
미라님에게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계속 들어요.
적과 싸우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미라님의 생각을 알고 싶어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두를 구제해 주실 수 있도록……
그렇게 부탁드릴 작정이에요.
그렇구나……
아름이 자신의 길을 택한 것처럼 너 또한 선택한 거로구나.
아름……! 맞아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여기 계신다는 건
역시 해방군의 리더는……
그건 직접 확인하도록 해라. 이 계단을 올라가 보렴.
네가 가장 만나고 싶은 이가 기다리고 있을 게다.
아름!
너, 넌…… 세리카? 혹시 세리카야?
아름! 다행이야, 정말로 다시 만났어……!
내가 람 마을을 떠나고 7년 동안이나…… 계속 만나지 못했잖아……!
세리카…… 나도 정말 만나고 싶었어……!
그랬구나…… 대단해.
세리카가 해적 퇴치라니, 상상도 못하겠어.
퇴치라니……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
그것보다, 아름.
리겔 제국과 전쟁 같은 거, 하지 않을 거지……?
그건……
어쩔 수 없어. 침략해 온 건 녀석들이라구.
하지만 싸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그런 게 있었다면 다들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서진 않았을 테니까.
정말 그런 걸까.
소피아도 리겔도 원래는 같은 발렌시아 사람들이잖아?
분명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는 루돌프 황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황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어.
리겔 제국이 소피아를 침략하려고 한다는 건 사실이잖아.
우리는 그저 그걸 막을 뿐이야.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아름이 앞장서야 하는 거야?
할아버지의 손자라곤 해도 귀족도 기사도 아니잖아.
어째서 그런 위험한 일을 아름이……!
……큭!
……세리카까지 마치 귀족처럼 얘기하네.
신분은 상관없어. 나는 선택을 받아 여기 있는 거야.
그러니까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아름……
그리고 나도 좋아서 싸우고 있는 건 아냐.
사실 원인을 따져 보면, 리마 4세가 리겔 제국을 자극했기 때문이야.
이 나라를 통치해야 할 사람들이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구.
그래서 결국 이런 지경까지 되어 버렸잖아.
그, 그건…………
……뭐야.
그럼 아름이 왕이 되면 되겠네.
뭐?
왕족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제멋대로 말하지 말아 줘!
아름 넌 영웅이 됐으니까 이제 다음은 왕이 되고 싶은 거야?
아냐! 나는 그저 소피아를 지키고 싶을 뿐이야.
그리고 왕가에는 아직 단 한 사람, 살아 있는 왕녀가 있다고 해.
그 왕녀를 찾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마을로 돌아갈 거야.
그래, 그땐 세리카도 함께……
왕녀 따윈 없어. 소피아 왕가는 멸망했다구!!
세리카……?
……됐어.
아름, 넌 그렇게 계속 싸우도록 해.
나는 미라님의 신전으로 갈 거야.
안녕, 아름……
……아름 바보…………!
세리카……
뭐야, 꼭 저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도……
……………… ……아……
그러고 보니 묻지 못했네.
왜 그때 마을을 떠났는지……
………… 세리카……
얘기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될 줄이야……
염원해 마지 않던 재회를 이룬 아름과 세리카.
하지만 그것은 슬픈 이별로 끝나 버렸다.
한쪽은 싸움으로, 또 다른 한쪽은 신의 힘으로…… 다른 형태로 평화를 추구하는 두 사람.
그들이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날은 올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