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즈, 뭐 해?
오오, 셰이드.
행군 짬짬이 수확한 들풀이나 곡물을 조합해서 뭉치고 있다.
헉! 그거 설마……?
음. 새로운 병량환이다.
그거…… 만드는 의미 있어? 미안하지만, 난 절대 사양이야.
뭐!?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비상식량을 무시하는 거냐?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맛없잖아?
영양이라면 100점 만점이다!
맛은 마이너스 100점이지만.
으으윽……! 한마디도 안 지다니……!
뭐, 나도 그거 덕분에 살았으니 큰소리 칠 입장은 아니지만……
하다못해 개량을 해서 좀 더 맛있게 만들 순 없어?
선조님의 배합을 바꾸라고? 어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그건 오랜 세월 계승되어 온 것. 내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하아, 융통성 없기는.
애당초 처음 그 레시피를 생각한 사람은 그런 전례도, 전통도 없었을 거 아냐.
즉, 처음부터 새로운 걸 창조해 낸 거라고.
그 혼을 이어받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자손의 할 일 아냐?
쿠~궁!!
드, 듣고 보니…… 맞는 말이야. 덕분에 눈이 트였다, 셰이드!
난 이 병량환을 개량해서, 보다 좋게 만들어 후세에 전해주겠어.
우오오오! 불타오른다! 말이 나온 김에 당장 시작하겠어!
우후후, 그 마음가짐이야. 좀 더 맛있어지면 좋겠네.
셰이드. 저번에 준 「개량 병량환」의 맛은 어땠어……?
그, 그러니까…… 마이너스 1000점 정도랄까.
오오! 점수가 10배나 뛰었군!
반대야, 반대! 나빠진 거라고!
뭐, 뭐라고!? 뭐가 문제인 거야!
왠지 강렬한 산미가 더해진 것 같던데……
그거, 뭐야?
음. 이 지방 특산 오렌지를 조미료로 듬뿍 갈아 넣어 봤지.
탈락.
뭐라고~!?
뭐, 말이 좀 심했나.
뒷맛이 깔끔해서 그 점은 좋았어.
하지만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무너졌어.
원래 레시피는 의외로 절묘한 배합이었나 봐.
그런가…… 원통하군.
단…… 오렌지의 영양이 더해져 피부가 촉촉해진 것 같기도 해.
탈락이라곤 했지만……
어쩌면 완전히 헛수고는 아니었을지도.
오오! 정말인가!? 음, 음. 그럼 다행이군!
하지만 피부 관리라면,
이렇게 먹기보단 팩으로 하겠어.
팩? 그건 뭐지?
예전에 들른 나라에서 배운 건데……
과일이나 야채 슬라이스를 피부에 붙이는 미용법이야.
피부가 희고 예뻐지는데 탱탱해지기까지 한다고.
흠…… 기괴하군…… 그건 좋은 건가?
너, 해 본 적 없어? 그럼 내가 다음에 알려 줄게.
아니, 미용 지식은 됐어. 난 검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그런 말만 하니까 병량환 개량 하나 못하는 거 아냐.
으윽! 조, 조용히 못 해!
다음에 준비해 올 테니까 해 봐! ……알았지?
알, 알았어…… 내키진 않지만…… 잘 부탁하지.
오오, 셰이드!
저번에 알려 준 「팩」 말이다만
제법 좋은 것이더군!
우후후…… 그렇지? 피부에 정말 좋다고!
솔직히, 미용 쪽 효과는 잘 모르겠다만……
어?
이렇게, 차가운 오렌지를 얼굴에 붙이고 눈을 감으면……
참으로 편안한 기분이 되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마치, 명상을 할 때처럼 정신이 날카로워지더군.
듣고 보니 그런 기분이 될 때도 있지만……
뭐, 어찌 됐든 마음에 들었다니 기뻐.
팩에는 발군의 정신 집중 효과가 있다고 모두에게도 알려 줘야겠어.
그래! 다음엔 다들 팩을 한 채로 전투에 임하는 건 어떨까?
탈락.
어째서~!?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피부에 영양을 충분히 흡수시키는 편이 좋아.
그러니까, 한 채로 움직이는 건 안 돼.
그, 그래……?
모처럼 오렌지가 이렇게 많이 있는데……
설마, 그 옆구리에 끼고 있는 자루……
내용물이 전부 오렌지야?
으, 음…… 좀 흥분해서 너무 많이 사들인 모양이야.
꽤 많이 산 것 같은데…… 혼자 다 쓸 수 있겠어?
그러게. 아까운 짓을 해 버렸어.
에휴, 어쩔 수 없지. 잠깐 빌려줘 봐!
어떻게 하려고?
과즙은 주스로 만들어 나눠 주고…… 껍질은 잼으로라도 만들어야지 뭐.
잼……?
유즈네 나라엔 없었어? 과일을 조려 만든, 일종의 보존 식품이야.
그건…… 맛있는 건가?
맛있지. 병량환보다 훨씬 더.
그 말투는 마음에 안 드는군……
하지만 병량환 개량을 위한 새로운 지식으로서 흥미가 일어.
어머, 이제 유즈도 머리가 좀 유연해졌구나.
그럼 같이 만들자. 껍질 벗기기 좀 부탁할게, 유즈.
아아, 맡겨만 달라고. 나의 묘기를 보여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