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대륙의 남단에 위치한 변경의 작은 마을.
좋아, 아름.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다.
실력이 상당히 많이 늘었구나. 역시 너는 좋은 재능을 지녔어.
할아버지……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머지않아 나도 버거워지겠어……
그럼, 저…………
……이제 슬슬 마을 밖으로 나가 봐도 될까?
……!
그것과 이건 별개 이야기다. 마을을 나가는 건 결코 허락 못 해.
어째서! 이제 난 꼬마가 아니야.
검 실력도 할아버지가 인정해 줬잖아?
위험한 일을 겪는다 하더라도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
아름……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럼 어떤 문제인데?!
그건…………
……그레이한테 들었어.
최근 몇 년 사이 가뭄이 심해져서 먹을 것이 없어진 사람들이
도둑질과 약탈에 손을 대기 시작해 마을들이 황폐해져 가고 있다고.
식량을 노리는 도적들이 우리 마을 근처까지 왔었대.
게다가 이웃한 리겔 제국은 수 년 전부터 국경으로 병사를 보내고 있고.
녀석들이 『신들의 맹약』을 깨는 바람에 몬스터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잖아.
………………
지금 이 나라에는 곤경에 빠진 사람이 정말 많아.
부탁이야, 할아버지.
나도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할아버지와 세리카가 알려 준 세계를 내 눈으로 보고 싶어.
그러니까……
……너 혼자서 검을 들고 이 마을을 나간다고 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
하찮은 도적들을 상대로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라니, 세상이니 하는 뜬구름 잡는 소릴 하기 전에 네 스스로를 돌아봐라.
아무튼, 마을을 나가는 건 허락 못 한다.
…………이게 뭐야!!
그럼 대체 뭘 위해 나한테 검을 가르쳐 주는 거야?
매일매일 이 작은 마을에서 수련만 하고……
나의 검은 대체 뭘 위한 검이냐고!!
알려 줘, 할아버지…………!
……뭐지? 소란스럽네.
마을 입구 쪽이야. 가 보자.
어머, 아름. 검술 수련은 끝났니?
꼬맹이였던 네가 이렇게나 늠름해지다니.
이게 다 마이센씨 덕분이겠지.
들리는 소문에 너희 할아버지는 유명한 장군님이셨다더라.
그런데 왜 이런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고 계시는지 모르겠구나.
요즘엔 이 부근도 상당히 위험해진 것 같으니
만약의 경우엔 할아버지와 네가 둘이서 우릴 지켜 주면 좋겠구나.
하아…… 배고파.
벌써 몇 년째 가뭄이 이어져서 멀쩡히 자라는 작물이 없어.
대지모신 미라님은 대체 뭘 하고 계신 걸까?
미라님의 은혜가 사라진다면 우리 소피아 왕국은 끝이야.
눈 깜짝할 사이에 리겔 제국에게 점령당해 버릴 거야.
리겔의 군대는 어마어마하게 강하다며?
그저 놀고만 있던 우리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우리는 이렇게 고생하는데 귀족들은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보내지.
국왕 리마 4세께서는 재상 도제의 꼭두각시가 되어
나랏일은 모두 맡겨 버리고 매일 후궁들과 놀고만 있다는군.
여기저기에서 반란을 일으켜서 나라가 대혼란 상태야.
하아~ 누가 좀 어떻게 안 해 주나……
뭐? 미라님?
그런 도움도 안 되는 신은 믿어 봤자 헛수고야.
오! 왔네, 아름.
너희 할아버지 손님이야. 우선 이야기를 좀 들어 보는 게 어때?
기사들은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니까.
어이, 아름. 너도 방심하지 마라.
이런 시골 마을에 무슨 볼일이지?
그건 그렇고, 기사 진짜 멋있다……
이런 시골에 굳이 뭘 하러 온 거지.
괜히 성가신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앗, 아름! 검술 수련은 끝났어?
마이센 할아버지 엄하시다며…… 다치지 않게 조심해.
당신이 마이센경의 손자인 아름군인가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루카.
소피아 해방군 소속입니다.
소피아…… 해방군?
그게 뭐죠? 소피아 기사단이라면 알고 있는데……
아아……
이 마을에는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처음부터 설명해 드리죠.
――얼마 전, 국왕 리마 4세 폐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재상 도제에게 시해당하신 겁니다.
뭐?! 도제가 왕을 죽였다고……?!
재상 도제는 우리 소피아 왕국을 리겔 제국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 대신 리겔 제국에서의 지위를 약속 받았겠지요.
지금 소피아 성은 도제와 리겔군에 의해 점령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부당하게 억압 받으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도제에게 대항하는 소피아 기사단의 클레베경은
유지들과 해방군을 결성하여 저항하고 있습니다만,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그래서 한때 소피아의 영웅이라 불리던 마이센경의 도움을 청하고자
저를 이 람 마을로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겁니다. 아름군.
저를 마이센경의 댁으로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으, 응……
맙소사……
요즘 세상이 뒤숭숭하다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저,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났다니까.
아아…… 무서워.
마이센 할아버지가 전쟁에 나서면 아름은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
아, 루카! 이야기가 벌써 끝난 거야?
그래서…… 할아버지가 뭐라셔?
……실패입니다.
마이센경께선 저희 해방군에 참가하실 생각이 없다고 하십니다.
뭐라고……!
할아버지는 지금도 엄청 강해.
도제 따위는 순식간에 처치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모두가 고통 받는 이런 상황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니……!
마이센경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저희가 너무 기대를 건 걸지도 모르죠.
아지트로 돌아가 클레베에게 보고해야겠습니다.
……"마이센경도 세월 앞에 약해지신 것 같다" 라고요.
…………!!
자, 아름군. 저는 이만.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할아버지…… ………………
기다려, 루카!!
아름군…… 왜 그러시죠?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나를 해방군에 넣어 줄 수 없을까?
네……? 당신이?
이, 이봐, 아름! 무슨 얘길 하는 거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야, 네 검술 실력이 상당하긴 하지만……
알고 있어? 전쟁에 참가하게 되는 거라고.
응, 알고 있어.
할아버지가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내가 해 주겠어.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모두를 위해 싸울 거야.
아름군……
루카. 나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에게 검술을 배웠어.
검술뿐만이 아니야. 병법과 의학, 날씨와 지형까지……
전투에 대한 다양한 것들을 배우며 자랐어.
그러니까 내 힘이 모두의 도움이 된다면 그건 곧 할아버지의 힘이야.
할아버지가 비겁한 노인이 아니라는 걸 내가 증명해 주겠어!
………………
괜찮은 생각인 것 같군요.
아…… 그럼……!
루카…… 그거 진심이야?
네, 물론입니다.
마이센경의 피를 이은 아름군이 참가해 준다면
해방군 병사들의 사기도 올라가겠지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말하니 저도 당신의 힘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부디 우리 해방군을 위해서 힘을 펼쳐 주세요.
루카……! 고마워!!
와우…… 이게 무슨 일이야.
아름, 그런 위험한 일은 그만둬!
아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난, 난……
미안해, 에피. 이미 결정했어.
저기, 너희도 함께 가지 않을래?
응……?
함께라니…… 해방군에 들어오라구?
응.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다들 나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검술이나 궁술을 배웠잖아.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거야.
하, 하지만…… 그런 건 놀이였잖아?!
진짜 전쟁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난, 가도 좋아.
그레이! 제정신이야?!
물론.
마을에 있어도 리겔의 침략을 받아 죽든가, 노예가 되든가겠지.
그런 걸 조용히 기다리는 것도 싫고 말이야.
너, 너…… 에엑……
감사합니다, 여러분. 대환영입니다.
해방군은 지금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니까요.
전투법은 실전 중에 제가 가르쳐 드리죠.
물론, 월급도 지급됩니다.
아…… 월급? 도, 돈을 받을 수 있어?
네.
병사로 군에 고용되는 거니까 당연하지요.
그, 그렇구나…… 우리 집은 동생들이 많아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힘들어 하고 계시거든……
………………
로빈. 무리해서 올 필요는 없어.
너희들도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 봐.
일단 헤어지고 나중에 여기에서 다시 모이자.
나도 할아버지한테 인사 드리고 올게.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이센경에게 인사를 드리고 오세요.
기사님은 저렇게 말하지만……
애초에 리겔 제국이 쳐들어 온 건
리겔 제국이 기근으로 힘들어 할 때 소피아 왕이 지원을 거절해서
저쪽 황제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여태 서로 도우며 꽤 사이좋게 지냈는데 말이야.
불쌍하긴 하지만 자업자득이란 기분이네.
설마 왕이 살해당할 줄이야……
그나저나 어떻게 되는 거지?
왕에겐 대를 이를 아이가 없을 텐데.
모두 도제가 죽였다고 하더라구.
해방군이 성을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누가 다음 왕이 되는 거지?
아름…… 마을을 떠나는 거냐? 그래, 쓸쓸해지겠구나.
하지만 조심해라. 람 숲을 빠져나가면 도적의 숲이야.
거기엔 어느 틈엔가 도적들이 살기 시작하더라고.
방심하고 들어갔다간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한다는 소문이 무성해.
할아버지, 다녀왔어!
저기, 할 얘기가 있는데……
……할아버지? 집에 안 계신가.
할아버지! 할아버지~!!
오, 왔네. 아름, 여기야!
로빈……!
잘됐다, 같이 가 주는 거구나.
그래. 부모님은 걱정하시지만……
아름만 멋 부리게 둘 순 없으니까.
무슨 소리야. 돈이 목적이면서.
상관없습니다.
싸우는 이유가 반드시 고결해야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나저나, 아름군.
마이센경에겐 제대로 인사를 드렸나요?
그게, 그…… 못 만났어.
이런, 그거 곤란하군요. 이제 곧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아, 가자.
네? 하지만……
할아버지에겐 나중에 편지를 쓸게. 자, 얼른 출발하자.
……그런가요. 그럼, 출발하시죠.
나도 갈게.
해방군이면, 소피아 안에서 싸우는 거잖아?
세계를 돌아본다 생각하면 그리 나쁜 얘기 같지도 않고.
뭐, 죽을 수도 있지만 말야.
클리프를 동료로 영입하겠습니까?
……아, 그래.
뭐, 됐어. 꼭 가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뭐야? 같이 가자고?
나, 나도 갈래!
아름이 가는 곳은, 어디든 함께할 거야!
에피를 동료로 영입하겠습니까?
그래……
아름, 네 뜻이 그렇다면 난 여기서 기다릴게.
아름이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을게……
왜~?
나도 데려가 주려고?
저기, 아름…… 정말 괜찮아?
아…… 뭐가?
마이센 할아버지 말이야.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까지……
아무튼 많으니까 나 하나 없어진다고
그다지 쓸쓸해 하진 않겠지만 말이야.
너희는 할아버지와 너, 둘뿐이잖아.
응……
하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날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으니
해방군에 들어오는 것도 틀림없이 허락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난 이번에야말로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어.
할아버지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너, 마을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항상 말했었지.
역시 그것 때문이야?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고 싶다, 뭐 이런 거?
으음……
그런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뭔가 항상 누군가가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뭐?
아하하…… 이상하지? 그런데 정말이야.
그거, 세리카 말하는 거야?
아…… 세리카?
왜 거기서 세리카가 나오는 거야.
왜, 너희 엄청 친했잖아.
뭔가 우리가 끼어들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야.
………………
――그럴지도 몰라.
세리카, 너야? 나를 부르는 게……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왜일까. 항상 너의 존재가 느껴져.
세리카―― 이 여행에서 언젠가 널 만날 수 있을까……
자, 우선은 남쪽 요새로 향하죠.
그쪽은 지금 도제군의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만
저희 동료가 탈환을 위해 싸우고 있죠.
저희 해방군의 아지트는 남쪽 요새 너머에 있습니다.
자, 그럼 각오를 다지고 가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