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먼 옛날, 도마와 미라, 두 신들이 오랜 시간 동안 다투고 있었습니다
있잖아, 어째서 도마와 미라님은 사이좋게 지내지 않은 걸까?
우리는 계속 사이좋게 지내자
미안해 라고 사과하면 용서해 줘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세리카, 세리카! 정신 차려!
세리카―――!!
아름, 아름…!
없네… 어디로 간 거지?
뭐해, 에피. 또 아름을 찾고 있는 거야?
아, 그레이!
저기, 아름 못 봤어? 오늘 전혀 안 보이네.
아름이라면 찾아도 소용없어.
클리프!
조금 전에 세리카랑 같이 숲 쪽으로 갔거든.
내가 봤어.
세리카랑… 그렇구나……
또 세리카랑?
세리카는 이 마을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아~아… 우정이란 참 덧없는 거구나.
그, 그런 거 아냐.
아름이랑 세리카는 친척이잖아. 사이가 좋은 게 당연하지.
아냐.
응?
아름은 마이센 할아버지의 손자지만, 세리카는 아냐.
어딘가에서 맡겨진 거라고 엄마가 그러던데.
너희 어머니도 그런 얘기 참 좋아하신다니까……
아무튼 뭐, 세리카한테도 사정이 있겠지.
……그럼 아름은……
나중에 커서 세리카를 신부로 맞는 걸까……
이, 이봐!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냐?
아, 여기 있다! 얘들아!!
뭐야, 로빈. 무슨 일인데?
지금 숲 근처에 성에서 온 기사들이 와 있대!
자자, 우리 보러 가자!
응? 기사?! 이런 시골에 무슨 일로?
클리프, 에피! 얼른 가자.
기사는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응!
앗, 기다려……!
아름. 저기, 아름! 이리로 와 봐!
왜 그래? 세리카.
꽃으로 왕관을 만들었어. 자, 써 봐.
뭐어~?! 시, 싫어.
어머, 왜? 잘 어울릴 거야.
어울리는 게 더 이상해. 난 남자라고!
아름 너무해. 애써 만들었는데……
아, 그렇지! 할아버지한테 선물로 드려야지.
에엑, 할아버지한테?
그래,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야. 우후훗……
……뭘 그렇게 웃어. 세리카.
아니, 안 웃었는데? 후훗…… 우후후……
…………후후
왜? 아름.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그래.
아, 아냐.
세리카가 많이 웃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서.
우리 집에 막 왔을 때는 어두운 얼굴로 계속 말없이 있었잖아.
할아버지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셨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엄청 난감했었다구.
…내가 웃을 수 있게 된 건 아름 덕분이야.
내가 말없이 있어도 항상 말을 걸어 주고
꽃을 꺾어 주거나, 숲으로 데리고 와 주기도 하고……
엄청 상냥하게 대해 줬잖아.
따, 딱히…… 그 정돈 아니었는데.
으응, 아냐.
그런데도 난…… 아름한테 심한 말만 했지.
아아, 그 『무례하다!』 사건?
미, 미안해……!
비슷한 또래의 친구와 노는 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거든.
아냐, 재밌는 아이구나 싶었어.
……저기, 아름.
아름은 어째서 이런 나를 상냥하게 대해 주는 거야?
뭐? 어, 어째서냐니……
나도 엄마나 아빠, 형제가 없어서 쓸쓸했었고,
할아버지 말씀 때문에 한 번도 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으니까
세리카한테 많은 얘길 들을 수 있어서 재밌기도 했고……
으음… 그리고…… 그리고……
…………아!
응? 왜 그래?
봐, 이거…… 친구의 증표!
아아, 이거. 아름의 왼손과 내 오른손……
응! 이게 있잖아.
후후후… 그나저나 정말 신기해.
어째서 우린 비슷한 흉터를 가지고 있는 걸까.
틀림없이 특별한 표시일 거야.
나와 세리카가 항상 함께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그러니까 난 앞으로도 계속 곁에서 세리카가 웃을 수 있게 해 줄게.
아름……!
정말? 항상 함께?
응, 약속해.
세리카는? 나와 항상 함께 있어 줄 거야?
응, 물론!
나도 약속할게. 아름과 항상, 언제나……
꺄악!!
방금은…… 에피 목소리야!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숲 쪽이야. 가 보자!!
그, 그만…… 놓아 줘……!
헤헷, 슬레이더님. 이거 운이 좋은데요.
아무것도 없는 칙칙한 곳인 줄만 알았는데 꼬마가 어슬렁거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 숲 근처에 마을이 있는 모양입니다.
잘 들어라, 꼬마들아.
바로!
훌륭하신 국왕 리마 4세 폐하를 모시는 우리 기사들이!
너희 평민들의 마을에서 외곽 임무의 피로를 풀고
환대를 받고자 한다.
더 이상의 영광은 없겠지? 자, 얼른 안내해라.
그건… 저기……
마을에 멋대로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면 부모님한테 혼나기도 하고……
기, 기사님!
저희 마을은 숲속에 있는 변변치 않은 곳입니다.
기사님들이 오신다고 해도 만족하실 만한 게 없어요.
그러니……
어이, 너. 누나는 있나?
네? 누나?
있긴 합니다…… 두 명……
하~하하하하핫! 훌륭해!!
그것과 술, 그리고 음식 정도는 있겠지?
너희가 먹는 음식들은 나한테 돼지 사료나 마찬가지지만……
뭐, 상황이 이런 만큼 참아 주마.
큭……!
……흐흑…… 훌쩍…… 으윽……
바, 바보야! 울지 마, 클리프!!
흐흑……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할 거야, 그레이……!
이 녀석들, 정말로 마을로 데려갈 거야?
나도 싫어!
제길, 왕의 기사가 이런 놈들이라니……!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나. 나는 성질이 급하다고!
안내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괜찮겠지.
너희의 목을 하나씩 베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에엑?! 그런……!
자, 계집! 우선 네 차례다.
시, 싫어……!
그만둬!!
아앙? 뭐야, 또 꼬마냐.
모두에게서 떨어져!
너 같은 녀석은 우리 마을에 한 발자국도 들여보내지 않겠어!
뭐라? 입을 함부로 놀리는 녀석이군.
……응?
……읏!
어이, 거기 꼬마. 얼굴을 보여라.
그만둬……!
……틀림없어, 이 녀석은……!
후후,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도제님에게 멋진 선물을 드릴 수 있겠군.
자, 이리 와라!
싫어, 이거 놔……!
세리카를 건드리지 마!!
크윽……!
아……아름! 이거 일이 커지는데……!!
큭……
이놈, 평민 꼬마 주제에! 이 몸에게 손을 대다니……
용서 못해, 죽음으로 사죄해라!
……윽!
하하하하하! 자, 기도라도 해 봐라!
그만둬! 아름―――!!
응……?
하, 할아버지?!
네, 네놈은 마이센……!? 어째서 이런 곳에……
……아냐, 그랬었군. 그런 거였어.
…………
마침 잘됐군.
그 화재의 밤 이후로 처음이구나, 마이센.
너한테는 항상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너희들.
이 앞에 있는 묘지까지 뛰어라.
응……? 왜, 왜?
시간이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하거라!
뛰어라!!
으, 응. 얘들아, 가자!
잘 들어라, 얘들아.
지금부터 내 지시를 따라라. 싸워서 녀석들을 격퇴하는 거다.
뭐?! 할아버지, 우리더러 싸우라고?!
할아버지, 진심이에요?!
무, 무모해요! 할아버지……
맞아요!
우리 같은 아이들이 기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으아앙…… 엄마……
다 싫어…… 돌아가고 싶어……!
시끄럽다!!!
……윽!!
돌아가고 싶다면 죽을 각오로 싸워라!!
아름, 세리카!!
으, 응!
너희에게는 평소에 검술을 가르쳐 줬을 터.
자, 이제 침착하게 그걸 실전으로 옮기는 거다.
너희들,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 거다.
자, 지금부터 내가 내리는 지시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라.
너희는 안전한 곳으로!
자, 적과 거리를 두도록 해라. 결코 깊이 쫓아서는 안 돼.
좋아, 모두 행동을 끝냈구나. 그 자리에서 적의 행동에 대비해라.
숲에 몸을 숨기도록 해라. 나무들이 지켜 줄 거다.
어떤 싸움이든 주변의 지형을 이용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제길, 이대로는……
뭐, 됐다. 여기서는 일단 물러나지!
성으로 돌아가 도제님께 보고한다.
살아 있는 왕녀를 발견했다고 말이야. 크크크큭……
해냈다! 우리가 이겼어!!
할아버지, 녀석들이 도망가고 있어!
저, 정말이야? 기사들에게 이기다니……
헤헤! 역시 우리들이야.
뭐, 우린 마이센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지만.
시끄러.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주제에……
하아…… 무서웠어……
해냈어, 할아버지, 세리카!
………………
………………
왜 그래? 기운이 없잖아.
우리가 녀석들로부터 마을을 지켰다구!
둘 다, 기쁘지 않은 거야?
아냐, 아름. 그게 아니라……
이곳에 있다는 것이 녀석들에게 알려진 이상,
세리카는 더 이상 이 마을에 있어선 안 된다.
……뭐?
어, 어째서? 왜 그렇게 되는 건데?
거짓말이지? 세리카.
……미안해, 아름.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뭐야…… 사과하지 마, 세리카.
마치 정말 떠날 것 같잖아.
자,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마을로 돌아가서 채비를 해야 한다. 세리카.
네, 할아버지……
기다려! 기다리라니까!!
할아버지, 제대로 알려 줘!!
왜 세리카가 마을을 떠나야만 하는 거야?!
그건 너와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은…… 말이지.
뭐야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난, 싫어!
세리카와 떨어져야 한다니……!
언제까지 바보 같은 소리만 하고 있을 거냐!!
세리카는 진작에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세리카……
……아름. 이거, 받아 줄래?
이건……
세리카가 항상 지니고 있던 부적이잖아.
이걸 나한테……?
응.
아름한테 줄게. 나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간직해 줘.
어머니께 받은 거야.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렇게 소중한 걸…… 난 못 받아.
괜찮아. 아름이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
분명 아름을 지켜 줄 거야.
……잘 있어, 아름.
……세리카……!!
……뭔가, 일이 커져 버렸네.
마이센 할아버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네.
어째서 가야만 하는지, 세리카가 어디로 가는지도……
어쩔 수 없잖아.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겠지.
아름과 세리카는 우리와 좀 다르니까.
다르다니, 뭐가?
뭐냐니…… 뭐든 다 말이야.
다 됐느냐? 세리카.
네……
아름의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요.
할아버지. 전 이제 어디로 가나요?
음……
내 오랜 지인 중에 부탁할 만한 곳이 있다.
그곳이라면 이번에야말로 녀석들의 눈에 띌 일은 없겠지.
미안하구나, 세리카…… 아니, 공주님.
이 마이센이 계속해서 곁을 지켜 드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마을을 떠날 순 없기에.
미안해 하지 마세요, 마이센.
저는 이 마을에서 마이센과 아름과 함께 살 수 있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정말로 즐거웠어요.
그러니까…… 저기, 마이센.
앞으로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되죠?
세리카…… 그래, 물론이다.
세리카―――!!
……?! 이 목소린… 아름?
세리카!!
아름……!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세리카, 기다려!
나, 앞으로 더 커서, 강해져서……
그리고 나서 반드시 세리카를 만나러 갈게!
세리카가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그러니까 세리카, 나를 잊지 마……!
아름……!
알겠어, 아름! 나, 기다릴게!!
아름과 만나게 될 날을 항상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안녕………
………………………… ……저기, 할아버지.
왜 그러냐, 세리카?
저와 아름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럼, 만날 수 있다마다.
그게 너희의 운명이라면……
……운명……
나와… 아름의……
한때, 이 지상에는 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다.
발렌시아라 불리는 이 대지에도 도마와 미라라는 두 남매 신이 있었다.
힘이야말로 모든 것이라 믿는 도마는 사람들이 타락하는 것을 용서치 않았고 생물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낙원을 꿈꾸는 동생 미라와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길고 긴 암흑의 시대를 거쳐 그들 사이에 하나의 맹약이 맺어졌다.
대지를 두 개로 나누고 북쪽을 도마, 남쪽을 미라가 지배하여 결코 서로의 땅을 침범하지 않기로 해, 겨우 발렌시아에 평온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수 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미라가 지배하는 남부 지방에 자리 잡은 소피아 왕국.
여신이 가져다 주는 사랑과 풍요에 의해 사람들은 풍족해져, 번영을 이룩해 갔다.
하지만, 끝없는 풍요에 젖은 소피아 국민은 부패하였고, 타락하고 퇴폐해져 갔다.
도마가 지배하는 북부 지방에 자리 잡은 리겔 제국.
험준한 자연 속에서 사람들은 신이 말하는 강함을 좇으며 늠름하게 살아갔다.
하지만, 강인함을 대가로 리겔 국민들에게서는 인간이 지닌 상냥함이 잊혀져 갔다.
각자의 모순을 안은 채로 시간은 흘렀고 지금, 발렌시아의 역사는 전란과 함께 또다시 움직이려 하고 있다――